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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8권 - 헌종, 철종 편 역사 잡상

 
그의 책에는 언제나 빠지지 않는 물음이 있다. 교과서나 일반 교양 역사서에 나오는 상식, 이모씨 등이 퍼뜨리는 자극적이고 절대악을 만드는 주장 등에 대한 물음이다. 그 대상이 어떻든 그는 거침 없이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의 생각을 말 한다.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틀리겠지만, 그 의의는 하나 같이 대충 역사를 공부해왔던 내 게으름을 찌른다.

 18권에서 가장 크게 던지는 의문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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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과 철종은 정말 무능력한 허수아비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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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대립은 어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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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동안 조선을 이끈 사대부들은 성공했는가?

 세도 정치에 대한 것은 의외로 연구가 많이 없다. 그냥 나쁜 놈들인 것은 확실하니까 그 사이에 벌어진 근대적인 모습들, 실학이나 민란 이런 거나 연구하자는 게 지금까지의 태도였을 것이다. 거기다 앞에는 정조, 뒤에는 흥선대원군이라는 정말 먹음직스런 떡밥이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그에게는 정말 힘든 한 권이었을 거다. 위키백과에 김조순만 봐도 섭정을 했다느니 하는 걸로 나와 있으니 -_-a

 이 책 초반의 가장 큰 물음은 이것이었다.

 - 보통 순조가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일을 안동 김씨를 제어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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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각해보자. 막강한 안동 김씨를 제어하기 위해 경험 없는 세자를 내세우고 자신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다? 왕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쪽이 정답이지 않을까?

 이런 물음의 답은, 순조에게는 그럴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17권 순조편의 순조는 안동 김씨에 밀려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왕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와 시대의 필요에 응답하지 않은 부지런하지만 무능한 왕이었다.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두 번째 물음은 헌종 자신에 대해서다.

 대충 헌종이 노력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박시백 화백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나는 그 노력 역시 풍양 조씨에 힘을 실어주는, 세도 정치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의 평가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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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잘 보아야 할 것은 안동 김씨를 제어하기 위해 풍양 조씨에게 힘을 실어주는 방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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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정조처럼 척신정치 자체를 척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에겐 새로운 사실이고, 이를 반박할 정도의 논리가 없다. 찾아 봤다 하지만 이 시기는 나도 별로 관심이 없던 시기라서 학계에서 어떻게 얘기되는지도 모르기도 하고 -_-; 아무튼 그렇다면 참 재밌는 사실이다.

 그 외에도 안동 김씨에 대한 얘기가 더 남아 있지만 조금 뒤로 미루고.

 책을 마무리짓기에 앞서 박시백 화백은 사대부의 조선 500년을 정리한다. 거기서 그가 내린 진단은 간단했다. 임진왜란 이후 사대부들은 현실에만 안주했다는 것, 훈구-사림의 교체 이후 더 이상 조선에는 새로운 세력이 자라지 못 했다는 것이다. 민란의 한계도, 실학의 한계도 짧게 언급된다. 치유되지 못 한 시대의 병은 계속 이어졌고, 세도정치를 거치면서 마침내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
 모두 문란할 대로 문란해져 외부적 요인 없이도 나라가 망할 충분조건이 구비되었다.

 
박시백 화백이 지적한 것처럼 고려에 비해 개혁적으로 시작했던 조선에서도 사대부라는 기득권은 만들어졌고 고착되었다. 그리고 여느 기득권들처럼 그들 역시 변화를 싫어했다. 때문에 대동법은 100년이나 흘러서야 겨우 정착될 수 있었고, 균역법도 영조 때에야 가능했다. 이미 변화할 수 없는 조선, 영정조 대를 르네상스라 하지만 그건 강력한 왕권 하에서야 가능했고, 그 절대왕권이 없어지자 이전의 모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그렇게 조선은 죽어갔다.
 500년이면 버틸만큼 버텼다. 외적의 공격에 시달렸다 하지만 고려에 비하면 그 기간도 정말 짧았다. 사실 기득권은 원래 시간이 흐르면 썩기 마련이고, 변화의 주체는 언제나 다른 세력이었다. 고려 말의 신진사대부들처럼. 하지만 조선에는 그런 새로운 세력이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어쨌든 살기는 좋았다고 생각해야 될까? 아니면 그런 걸 허용하기 힘들 정도로 조선의 시스템이 완벽했다고 해야 될까? 이 물음은 영원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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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평가는 한 번 내려지면 쉬이 바뀌지 않는다. 조광조, 이황, 사림에 대한 평가는 후대 사림이 내린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뀐 오늘까지도 당시의 평가는 큰 수정 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밝혀지고 있는 새로운 사실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존의 학설들은 모두 조선 후기에 내려진 평가이거나 일제시대 때 내려진 평가들, 즉 결과들이다. 조선왕조실록이 계속 분석되면서 거기에까지 이른 과정들이 밝혀져 갔고, 사림이 내린 결론, 일제가 내린 결론과는 다른 결론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지난 기간 동안 박시백 화백이 제시한 의문과 답들 역시 이런 식으로 나왔다.

 이번 권에서 박시백 화백의 물음은 풍양 조씨가 안동 김씨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었냐는 것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안동 김씨가 김조순의 방식을 이어 받아 자신의 지분을 내 준 것이고, 철종 이후에는 완벽히 세도 정치를 누린 것으로 해석했다. 철종 초의 숙청도 풍양 조씨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세도 정치 자체를 없애려 했던 헌종의 남은 세력들을 없앤 것으로 해석한다. 참 재밌는 부분,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른 이들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박시백 화백은 전권을 통해 그런 인물들 하나하나를 재평가했다.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아마 우리 모두의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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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의 조선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나? 사림의 조선은 성공적이었나?
 모르겠다.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이 때 조선은 외부의 공격과 상관 없이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외환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무렵, 내우는 극에 달해 있었다. 천명이라는 게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환상적인 조합이었다. 

 마지막 두 권은 이런 조선이 망해 가는 과정이다. 그는 아무리 일제의 감독 하에 만들어졌더라도 "조선왕조실록"이니만큼 마지막까지 실록을 위주로 다루겠다고 했다. 격하게 동감하고, 책 한 권을 사는 것밖에 안 되겠지만 계속 응원할 뿐이다. 현대 한국인들의 감정이 잔뜩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조선 말기, 헌종-철종까지 그는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다. 마지막까지 그럴 수 있을까? 과연 흥선대원군의 시대, 고종과 민비의 시대는 그의 손에서 어떻게 다뤄질까?

덧글

  • 을파소 2011/11/23 22:38 # 답글

    그런데 표지의 저 분은 누구입니까? 철인왕후라기엔 나이가 든거 같고, 순원왕후나 신정왕후가 아닐까 싶은데요.
  • 눈시 2011/11/23 23:25 #

    순원왕후요. ' -') 안김이나 풍조(?)나 세대가 살짝씩 바뀌니 외척이라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표지 모델로 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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