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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회연교는 누굴 향한 것이었는가? 조선 후기(효종~고종)

 신입이 선배님들께 인사함에 있어... 그래도 뭔가 많이 안 다뤄지면서도 관심 많이 갈 만한 걸 해야겠죠?
 최근에 보다가 패닉 상태에 빠진 것이 정조가 죽기 전에 남긴 일갈, 오회연교입니다. 일단 내용면에서 "사도세자 추숭을 반대하는 벽파에게 경고"하는 내용이고, "남인을 등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정 반대의 주장도 나오죠. -_-; 이게 당최 뭘지...

 일단 전 이렇게 극과 극의 주장이 나온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우선... 저 나름대로 오회연교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1. 신축, 임인년의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진짜배기거든? 근데 그 폐단이 많아서 영조대왕께서 그들을 붙잡아서 적에게서 구해주셨어. 김이재도 마찬가지야. 니가 지금 하는 게 니네 아빠 이복원이 김이재 할아버지 김시찬 구했던 거랑 똑같은 거 같지? 김시찬은 의리를 아주 잘 지켰고 니네 아빠가 그거 구한 것 역시 그것 때문이야. 하지만 김이재는 아니야. 걔는 의리의 반대편인 [세속]의 무리야. 이게 다 [의리] 때문이야. 니는 지금 아예 반대되는 짓 하고 있다고.

이시수 : 아 제가 원본 못 봐서 경솔하게 말 했네요. 죄송해요.

2. 시끄럽고 계속 들어. 나는 덕이 없어서 30년간 제대로 한 게 없긴 해. 근데 내가 법은 제대로 지켰거든? 일단 을해년(이인좌의 난) 이후에는 정치도 제대도 안정됐는데, 원래 천도라는 게 바뀌는 거라서 성쇠가 반복됐자너? 다들 을해년 이전의 마음(탕평?)을 지키고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냐. 그랬으면 어떻게 모년에 의리를 범하는 일이 벌어졌겠냐고.

3. 그 원인이 뭐겠냐. 지 몸만 생각하고 의리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그게 처음에는 [모년의 대의리]에 관계됐지. 두 번은 을미년(영조가 대리 청정을 하려고 하자 홍인한 등이 방해한 것)에 벌어졌고, 세 번은 병신년(정조 즉위년. 홍인한이랑 김귀주 사이좋게 숙청)이었고 네 번째는 정유년(정조 1년. 궁 안에 자객이 들어오기도 했고 홍계능 등을 숙청)이었다. 그나마 그 이후에는 잠잠해졌지. 니들은 다 누구냐. 선조 때부터 대대손손 충성을 바친 자들 아니야? 근데 그놈들은 잘못을 범해서 뿌리 뽑혔으니 이건 자비로운 군자라 해도 방관할 일이 아니었던 거야. 다행히 아직 청의(절개 있는 선비)가 사라지지 않은 게 다행이지. 누구는 그러겠지. 두 척리(홍씨 김씨)의 다툼이 춘추 전국시대 같다고. 하지만 걔네들이 그냥 척신들 뿐일까?

4.나는 오직 이 더러운 [습속]을 새롭게 하려는 것 분이야. 의리를 천명하고 대도(道)로 가는 길을 세우려고 한 거라고. 의리에 관계되는 일은 반드시 못을 자르고 쇠를 끊듯 과감해야 된다고.

5. (한 숨 돌리고) 병신년 이후 (즉위한 이후) 등용한 사람들 보면 내 진의를 알 거다. 아, 홍국영 문제가 있었지만 그게 의리랑은 크게 관련 없어. 채제공(남인), 김종수(벽파)은 마침 병 걸릴 때가 같아서 8년 동안 쉬게 했다가 다시 등용했는데, 그 때 사람이 많아서 윤시동(벽파) 같은 사람도 쉬게 했다가 다시 등용했었지. 대체로 이렇게 8년 주기로 해서 시간을 낭비하긴 했지만 나름 이유가 있었어. 시대 상황이 그랬고 그게 그 사람의 신망을 기르는 방안이기도 하잖아. 우연이긴 했지만, 어쨌든 다들 의리를 지켰기에 등용한 거야. [깊은 뜻이 따로 있어]

6. (그게 무엇인고 하니) 옛날에는 (숙종, 영조 때?) 당쟁을 없애기 위해서 등용하고 물리치는 게 기준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난 이렇게 엄격하게 기준을 뒀다고. 이른바 [시時]자의 의미가 큰 거다.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얼마 없다 하지만, 참으로 의리를 지키는 자는 [우리 당]의 사람이니까, 내 기준은 언제나 이랬어.

이시수 : 에... 제 점수는요는 아니고 솔직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7. 요순 얘기 일단 해 줄게. (길게 하고) 의리는 별 거 아냐. 모든 일에서 지극히 옳은 게 의리야. 옛 의리와 오늘날의 의리를 막론하고 지극히 옳은 것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야. 지극히 옳으니까 선배들도 모두 법칙에 맞고 가르침을 따르는 쪽으로 갔는데, 겉만 아는 별종들이 기회를 엿보고 있어. 이게 세도의 걱정 아니겠어? 의리는 지극히 정밀하고 엄정하고 면밀히 살펴봐야 된다. 내 학력으로 이런 걸 똑바로 보았다고 자부한다. (정조는 스스로를 유학의 중심으로 여겼습니다. 君師 임금이 스승이라는 거죠.)

8. 을묘년(정조 19년) 이후에 나는 이런 [습속]을 바로잡기 위해 [교속] 두 글자를 끄집어 냈다. 대체로 [인정이 두터운 쪽]에 대해 야박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속]자 하나로 말했는데, 따지고 보면 모년에 의리를 범한 것도 이 [속]이고, 을미, 병신년에 관계된 것 또한 이 [속]이었어. 지금 신하들이라면 아무리 멍청해도 이 [교속]이라는 말이 형벌보다 심하단 걸 모르겠냐? 이조 판서 (이만수)만 해도 사직할 때도 이 교속을 말 했으니 내 뜻을 얼마나 잘 알았겠냐.

9. 몇 년 전부터 돈이랑 벼슬자리만 추구해서 미친듯이 허둥대는 놈들이 많다. 이 놈들은 아비도 없고 임금도 없어. 지 친적들을 이리저리 다 끌어대고 있는데 말이야. 내가 없애려 하고 있는 거야. 정승의 동생을 이조 판서로 삼은 건 말이지. 말도 안 되는 건 아니까 한 거야. 이만수도 그래서 사직한 거지. 내 뜻을 바로 안 거라고. 근데 김이재 이 놈이 문제지. 이 놈이 욕한 건 이조 판서 뿐이지만, 그 말들은 모두 내가 한 교속]을 공격한 거야. 내 뜻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이러니까 어쩔까?

10. 김이재는 어리니까 별 상관 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걔는 옥당홍문관)의 유학자고 명문집안이라고(안동 김씨 -_-a) 그냥 무시할 수 없단 말이야. 을묘년 이후에 좀 됐다 생각했는데 된 게 하나도 없네. 내가 늙었지만 이런 거에 어찌 단호하지 않겠냐. 최근에는 사람이 없다는 한탄만 있어서 일단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요새 정신과 근력이 날로 쇠약해지는 것도 그것 때문일 거야. 참고 참다가 지금 얘기하는 거야. 막말하는 거 아니야.

11. 교서를 내리든가 할 건데 일단 니들한테 먼저 말 한다. 나가서 가엽고 딱한 자들에게 일깨워 줘라. 의리를 지키는 사람은 의기가 북받쳐오를 것이고 죄 지은 놈은 무서워해서 자수할 것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놈도 의리를 지키려 하겠지. 아빠가 자식을 훈계하고 형이 아우에게 [속습]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거다. 잊지 마라.

이시수 : 네... 다 말할게요. 그런 놈들이 있다면 누가 감히 의리를 범하겠어요.

12. 의리를 천명하든 자수하든 모두 지가 결정해야 된다. 김지애는 가소로우니 더 문책할 생각은 없다. 오늘 나는 맨 먼저 [의리가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을] 말했고, 다음은 규모, 다음은 인재 등용, 다음에는 가르침을 펴는 것을 말 했다. 이거 확실히 기록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원본은 반드시 보관해라.


 ... 아 대왕님 그러니까 당최 무슨 말이냐고요 -_-

 일단 이게 벽파를 노리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의리가 시대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자기가 직접 친절하게 요약까지 해 준 것을 들 수 있겠죠. 흔히 정조는 신임 의리를 임오 의리로, 노론 중심의 의리를 자기 중심으로 바꾸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 쪽으로 생각한다면 이건 벽파를 향한 공격이 맞을 겁니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심환지의 어찰이 문제입니다. 거기선 이렇게 말 하고 있죠.



"시파란 말을 쓰기 싫어서 [속]이라는 말을 썼더니 그놈들이 알고 저 지x이네."
"이만수는 색이 다른 것 같아도 알고 보면 친벽파야. 일단 지금은 사직하게 하는 게 낫겠지만 걔를 중용해야 돼."

 이 편지만 본다면 정조가 노린 건 반론의 여지 없이 [시파]입니다.

 자, 이렇게 혼돈이 시작됩니다. 그 때는 정조가 한참 죽어갈 때, (설마 두 달 후 죽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겠지만) 조급해진 정조는 김조순을 외척으로 두는, 자기 철학도 부정하는 무리수를 둘 때였습니다. 거기다 저 김이재, 안동 김씨입니다. -_-;

 이 때문에 안대희 교수는 이게 벽파를 중용하겠다는 의지였다는, 정 반대의 주장을 했죠.

 "채제공, 심환지, 윤시동이 교체된 것이 8년을 주기로 됐지만 이건 우연일 뿐 누굴 차별하는 게 아니라 어진 사람에게 일을 시킨 거다"

 이런 요지의 말도 있지만, 이건 시파, 벽파 어느 쪽이든 대입할 수 있는 말입니다. 시파를 상대라면 벽파를 등용한 게 이런 이유에서였다, 벽파라면 남인을 등용한 건 이런 입장에서였다는 거죠.

 ... 정말 애매합니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사도세자 얘기는 전혀 들어 있지 않죠.

 시파라고 본다면 심환지의 어찰의 존재가 너무 크고, 벽파라고 본다면 그 때 상황이랑 전혀 맞지 않는 상황... 그리고 목표가 벽파라고 하더라도 저 상황에서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벽파의 수장한테 "시파한테 하는 거임" "나 화 낸 거 일부러 한 거임" 하는데 이게 경고의 의미가 될까요 -_-;

 글쎄요. 정조는 심환지에게 당일 보낸 어찰에서 이렇게 말 했습니다.

 "내가 평소 땐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저렇게 성깔을 냈으니 그 놈들 쫄았을 거다"

 어느 쪽이든 이런 결론을 내려봅니다. 정조가 그 직후에 죽었으니 그 때 상황이 급박해 보였던 거지, 정조는 정말 급해서 저렇게 화를 낸 게 아니었다구요. 이후 "자수해라. 안 하는 놈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겁 주지만, 정작 "나 그 놈 이름 얘기 안 할 거다. 알아서 자수해야지"라는 식으로 말을 빼던 게 정조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정조의 계산이라고 봐야 되겠죠. 그리고, 대체 누구를 향한 건지 짐작하기 어려운 말, 둘 다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말을 하면서 일부러 성질을 냈다는 것, 여기에 집중해야 되지 않을까요?

덧글

  • 2011/10/02 10: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눈시 2011/10/02 11:22 #

    네. 반갑습니다. :) 저는 거의 조선사 위주로 갈 것 같네요.
    뭐 더 중요한 건 누굴 향한 거냐는 거겠죠.
    저 성깔은 보름 약간 넘게 고루고루 내고 있고, 그 동안 심환지에게도 어찰을 꼬박꼬박 보내니까요 -_-;
  • fdu123 2011/10/02 13:45 # 답글

    제생각인데 추숭에 실패해서 준론탕평이 무너지자 그 책임은 정조자신이지만 자신의 계획인 추숭을 반대한 쪽은 벽파니까 그 추숭실패, 준론탕평 실패라는 죄를 벽파에게 전가하기위해서 오회연석때 오회연교를 통해 내보이지 않았을까요? (전제 : 어찰의 비중을 작게 볼 경우)
  • 눈시 2011/10/02 14:01 #

    네. 결국 어찰의 비중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게 뒤집힌 결정적인 계기가 어찰일 테니까요. = =;;
    다만 비중을 작게 보더라도 거짓이 아닌 이상 화 낸 거에 비해 (보름 동안 계속 얘기 꺼내고 화내고 그랬습니다) 공격의 강도는 약했던 것 같구요.

    하긴 그래도 책임 전가라는 면에서는 이걸로도 충분하긴 하겠네요.
  • 파랑나리 2011/10/12 22:59 # 답글

    심환지가 어찰을 간직한 까닭은(어찰에서 宣帝는 읽고 처분하라고 했지요.) 먼 뒷날 이덕일 같은 사기꾼들이 자신을 음해한 걸 미리 알고 그런게 아닐지
  • 눈시 2011/10/15 20:16 #

    아하하하 ( - -);
    그럴 듯 한데요 :D
  • 파랑나리 2011/10/16 16:15 #

    저는 宣帝의 어찰첩을 간직한 심환지와 이덕일을 떠올리면서 옛 사람의 혜안에 감탄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걸 따라잡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헐뜯기만 하지요.
  • Lautitia 2012/07/08 15:29 # 답글

    오회연교 처음 봤을 때 시파 쫄으라고 하는 소리로 이해했었는데, 시중 해석들이 완전 반대더군요 ㅋㅋㅋ 저의 생각은 처음부터 변함이 없었습니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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