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이 자세히 다뤄주셨으니 간단히 제 후기를 말하자면...
1. 정말 이런 저런 얘기, 평소 때 오프라인으로 실컷 얘기하고 듣고 싶었던 얘기들이 자유로이 오가는 게 참 즐거웠습니다. 일반인들끼리 얘기할 때는 분위기 망치는 지름길이 되는 얘기였으니까요.
2. 경군님의 요시치카 얘기는 참 -_-; 타이라노 키요모리부터밖에 모르는 저로서는 그 이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신기했죠. 겐지와 헤이시의 대립, 그 속에서 죽은 사람이 다시 등장해야 했던 이유는 고찰해 봐야 될 문제인 거니까요.
3. 진성당거사님의 얘기는 그저 재밌었다고밖에는 (...) 저로서는 그저 놀라울 뿐인 얘기였는데 예전에 많이 하셨다고 하더군요.
4. shaw님의 로마사에서 느낀 점은 하나였쬬. 저 역시 공화정은 로마인 이야기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구나 하는 거요. 공화정 중기에 대한 얘기를 넘어서 공화정 자체에 대한 고찰과 빼뽀네님의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까지... 주식회사에 비유하신 것은 뭔가 살짝 충격이었습니다. '-')
5. 뒷풀이야 뭐 ~_~;;; 누친님 집에 잘 들어간 것만으로도 다행 (...) 크핫군님 집에 갈까 말까 하다가 뒷풀이 가 버려서 죄송해요 ( ㅠㅠ);;
6. 아무튼... 역밸 모임에 처음 참가했는데... 정말 재밌었습니다. 다음에 또 가서 여러 얘기 나누고 싶네요.
그럼 본편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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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짧은 휴전
"북계의 시내와 강에 얼음이 두껍게 얼어 두께가 4, 5척이나 되는데, 갑자기 갈라져 흘러 내려가니, 부로들이 오랑캐 군사가 경계 안에 들어올 징조라 하였다" - 1245년
최이(최우)의 막장 행각은 계속됐습니다. 자기 집을 꾸미기 위해 육지에서 잣나무와 소나무를 계속 운반하고, 하다못해 얼음까지도 운반하게 했죠 -_-; 남의 참소만 듣고, 혹은 자기에게 맘에 들지 않으면 강이나 바다에 던져버리는 짓거리도 계속됐구요. 이 중 김경손도 모함을 받긴 했지만 그에게까지 벌을 줄 순 없어서 다행히 넘어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육지를 복구할 생각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각 도에 권농별감을 보냈는데, 말 그대로 농사를 권장하는 직책이었죠. 하지만 실상은 세금을 더 원활하게 거두기 위한 것이었고 기존의 방호별감이랑 다를 게 없어서 폐지됩니다.
그 아들 만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박훤(박문수)가 얘기하기도 하고, 송국첨도 그들이 하는 사채를 막아보기도 했고, 김지대의 경우 아예 만전의 수하를 강물에 던져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건 만전의 이 한방으로 해결됩니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에도 이같이 압박을 당하니, 만약 돌아가신 후에는 우리 형제는 죽을 곳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꼴에 아비라서 그런 건지, 이런 것을 통해 뭔가 (삥 뜯는?) 능력을 본 건지 최이는 그를 환속시켜 자기 후계로 삼습니다. 그는 속세에 돌아오자마자 상장군에 오르니 바로 최항입니다.
3차 침공이 끝나고 몽고군이 물러간 지 어언 8년, 결국 그 동안 최이가 한 것이라고는 자기 집 꾸미기랑 자기 후계 만든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 동안 육지의 상황은 처참하게 돌아가고 있었죠. 5년 동안의 피해는 그리 쉽게 복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금은 내야 했고, 최이 자신을 만족시키는 일에 계속 동원돼야 했죠. 이런 상황에서 1246년에는 이런 일까지 벌어집니다.
"독충이 비처럼 떨어졌다. 그 벌레는 몸이 가는 그물에 싸여 있는데 쪼개면 흰 털을 베는 것 같고, 음식에 딸려 사람의 뱃속에 들어가거나, 혹은 피부를 물면 사람이 곧 죽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식인충이라고 불렀다. 약을 써도 죽지 않았으나 파즙을 바르면 곧 죽었다"
대체 어떤 놈이었는지 몰라도 타이밍은 참 잘 잡은 것 같습니다. -_-
그렇게 1247년이 밝았습니다. 이 때 몽고에 항복한 동진에서 50명이 고려에 귀순해 오기도 했지만 그저 (이제는 괴뢰국이 된) 동진과의 대립을 낳을 뿐이었죠. 최이는 이 해 만전을 환속시킵니다. 그리고, 전 해에 칸이 된 구유크 칸은 마침내 고려를 토벌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2. 재침
폐허가 된 서북 지방에는 심심하면 몽고군이 쳐들어와 수달을 잡아가는 등 약탈을 하고 돌아갔습니다. 고려 조정에서도 이들을 막을 수 없었죠. 이 해에도 400여 명의 병력이 들어왔죠.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습니다. 그들은 황해도 수안까지 둘러보며 정찰을 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3차 침공은 몽고가 때리다 때리다 지쳐 돌아간 케이스입니다. 아무리 좁아도 거친 편인 바다를 건널 순 없었고, 아무리 육지에서 깽판을 쳐도 고려왕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절실히 느꼈죠. 그렇다고 고려 전체를 불태우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유목민, 기마병이 아무리 기동력이 우세해도 대군이 움직이려면 보급이 필요했습니다. 몽고군은 대규모의 말과 양 들을 이끌고 다니며 보급했죠. 하지만 이 가축들을 충분히 먹일 수 없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 허영만 화백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보면 금나라는 쌀을 먹고 전쟁 때마다 그 쌀을 운반해야 되니 초원으로 올라올 수 없다는 내용이 (약간 비웃는 듯이, 혹은 몽골의 유리함을 자랑하는 듯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죠. 초원이 아닌 곳에서는 전투력은 둘째 치고 천하의 몽고군도 보급 능력이 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군을 몰고 들어오기도 힘든 상황, 대군을 몰아치더라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눈 앞에 보이는 성들을 다 깨뜨리지 않는 이상 고려 전체를 먹는 건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고려에 온 신경을 쓸 수도 없었습니다. 서쪽의 바투 등과는 결별하다시피 했고, 남송과의 전면전도 시작돼 버렸으니까요.
그렇다고 항복한다 해놓고 제대로 공물도 바치지 않고 입조도 안 하는 고려를 그냥 둘 수도 없었습니다. 짧고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이번에 대장을 맡은 자는 아무간(야무칸), 그는 구유크 칸의 명령을 기다리며 치밀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명령이 떨어지자 실행에 옮기죠.
3. 왕은 나오라
"우리 나라는 몽고와 화의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별달리 경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때에 이르러 도피하여 숨어 있던 자까지도 모두 쫓기고 노략질을 당하여 화를 면한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하였다"
그는 별 목표 없이 남쪽으로 내려가서 게릴라전에 휘말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앞만 보고 진격한 것도 아니었죠. 압록강에서 서해도(황해도)에 이르기까지 숨어 있는 성을 하나하나 공격하며 남아 있는 고려인들을 처리한 것입니다. 결국 몇 년 동안의 평화로 조금이나마 살 만 했던 사람들은 다시 섬이나 다른 지방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 그렇게 몇 차례 계속 밟히면서도 사람이 계속 살았다니 참......
이 과정에서 이후 궂은 일을 도맡아 한 김방경이 등장합니다만 다음 편으로 미루겠습니다.
이렇게 차근차근 진격한 아모간은 마침내 황해도 연안에 도착합니다. 이제 그의 앞에 펼쳐진 것은 넓은 바다였죠. 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몽고군이 거기까지 이르렀다는 것만으로도 조정에는 큰 충격이었죠.
조정에서는 바로 사신을 보내 몽고군을 호궤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죠. 철수하면 공물을 성실히 납부하고 입조하겠다는 것, 아모간은 고종이 직접 나오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또 대립하다가 이번엔 강화도 맞은편 갑곶진으로 장소를 바꿉니다. 고려에서는 다시 신안공 왕전이라는 카드를 내밉나다만, 결국 결렬됩니다.
고려가 계속 버티는 걸 본 아모간은 별 미련 없이 후퇴합니다. 어차피 해전 준비가 안 돼 있었으니 더 이상 방법이 없었고, 더 밀고 나가봤자 3차 침공 때와 같은 결과를 낳을 뿐이었죠. 그가 이끈 병력도 그리 많진 않았던 모양이고, 고려 조정을 직접 타겟으로 삼아서 병력을 분산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들어온 상황이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피해가 적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로 인해 청천강 북쪽은 확실히 몽고군의 손에 떨어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북계 지방 전체가 몽고의 전진기지화 됐죠. 굳이 압록강을 건널 필요가 없었고, 몇 차 몇 차를 나눌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매년 크고 작은 규모가 들어왔다 나갔다 합니다. 고려가 완전히 무릎 끓을 때까지 말이죠.
아모간은 우선 청천강 북쪽으로 철수합니다. 하지만 흔히 4차 침공이라 정의하는 이 전쟁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해에도 그는 쳐들어 왔고, 다행히 이번에는 섬으로 도망쳐서 피해도 그리 크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끝낸 것은 고려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데서 왔죠.
한편 아모간이 쳐들어온 상황에서 최이는 아들 최항을 추밀원지주사로 삼습니다.
최이가 죽을 날도 그리 멀지 않은 상황, 3대 세습이 슬슬 굳혀지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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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임용한 교수 의견을 인용하며 "강화도로 못 간게 아니라 안 간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내보인 적이 있습니다. 일단 지금은 "못 했다"는 쪽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고려를 완전히 점령하거나 파괴할 병력 역시 안 투입시킨 게 아니라 투입시키지 "못" 한 쪽으로요.
후에 쿠빌라이 칸은 일본 정벌을 요구하면서 "니네 병력 5만 있다매? ㅡㅡ"라고 합니다. 이게 단지 윽박지르는 것만은 아닌 것 같은 게 여러 차례 현지 다루가치와 주둔군 외에도 계속 사신을 보내 고려의 병력을 살폈거든요. 그 상황은 절망적이었죠. orz;;; 뜯다 뜯다 고려가 진짜 죽을 것 같으니까 쌀 2만 석을 원조해 주기도 했습니다.
헌데 이들은 수십 년 동안 고려 전국을 파헤쳤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5만 병력을 믿었다는 것, 이것을 바꿔서 말 하면 강화도에 그 정도의 병력이 있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겠죠.
강화도를 아예 못 건넌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진도 토벌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아해의 물에 대한 두려움 등을 보면 대규모 병력을 한꺼번에, 그리고 안전하게 옮길 정도는 안 됐다고 봐야겠죠. 다시 말 하면 "강화도에 있을 5만의 고려 정예군"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는요.
아직은 제 생각 단계긴 하지만, 몽고는 고려를 꽤 과대평가한 것 같습니다. 후에 차라대 역시 강화도로 가는 조운로를 끊으려 했지 강화도로 직접 상륙할 생각은 못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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